2009 - 09 - 04
※ 아정포 카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나너너나님이 거짓말한 거 맞습니다. 맞고요... 그렇다면 그 무시무시한(?) 구라(?) 를 이제야 알게 된 우리들의 자세는?
또 제가 빼놓은 입장이 있나요?
새삼스럽게... 여러분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얼터 이고 (alter ego) 처음 봅니까? 게임 속에서 자신과는 다른 성별, 다른 나이, 다른 계급의 아바타 하나쯤 키워보신 적 없나요? 손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고, 나너너나는 이진법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캐릭터라고, 할배나 미네 같은거 기대하면 꼭 실망할 거라고 그렇게 여러번 그분 자신이 힌트를 드렸건만... "나는 거짓말쟁이요. 내가 나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은 픽션일 가능성이 높소" 라고... 미네르바의 말투로 세간의 관심을 끈 직.후.부.터. 줄기차게 써오셨건만... 문법과 문체와 단어선택과 행간에 숨겨진 뉘앙스는 그렇게도 잘 분석하는 고수분들께서 중딩도 읽을 수 있는 표면의 단순한 의미는 왜 그렇게 오래도록 고집스럽게 노골적으로 무시하셨는지...
지난 1월 나너너나님의 첫 글들이 예측한 바가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미네르바 냄새만 좀 풍겨주면 얼씨구나 하고 따라올 거여?" 대강 이런 스토리였는데... 집단지성의 상징이라는 아고라의 우리들은 다른 어떤 증거도 아닌 단지 "그의 향기"만으로 온갖 상상과 환상을 품고 우리들만의 기대에 부풀어 있었나 봅니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초딩처럼판타지 만화 속에 갇혀 사는 오타쿠처럼... 소설책의 내용이 자신이 믿는 사실과 다르다며 의미없는 소송을 남발하는 펀다멘털리스트들처럼...
사람은 무언가를 책임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신의 언행에서 모순이 발견되는 것은 더 싫어합니다. 그래서 누구든 자기보다 쪼~끔이라도 더 나쁜놈처럼 생긴 인간이 나타나면 그 인간에게 모든 잘못을 다 뒤집어씌우고 자기는 결백한 척... 아무 것도 모르는 피해자였던 척... 억울한 척... 거기서 좀더 막나가면, 아예 악인을 징벌하는 정의의 사도를 자칭하는 낯두꺼운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까 언급했던 세 가지 반응... (물론 여러분의 글에는 이것보다 훨씬 깊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좀 단순하게 도식화하였습니다.)
웃기는군요. 마치 우리가 재판관이라도 된 것처럼? 봐주거나 관둘 권리라도 있는 것처럼? 이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나너너나님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려는 어설픈 시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마녀사냥도 위선이지만, 어설픈 똘레랑스 역시 리드미님의 말씀대로 위선일 뿐입니다. 만약,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면 잠깐 눈 딱 감고 재판관 노릇을 해 줄 수도 있겠지요. 세상엔 우리끼리 재판해야 할 일이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공정한 사법부가 괜히 필요한 게 아니죠... 근데 세상에 공범이 공범을 판단하는 곳이 어딨습니까? 공범이 공범을 봐줄 권리가 있는 나라가 어딨습니까? 나이를 40세 올려 말한 나너너나님의 픽션 위에 미네르바인지 마늘밥인지 하는 우리의 픽션을 또 덮어씌워 정작 본인이 그 픽션을 픽션이라 인정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든 것은 누구입니까?
누가 도덕불감증입니까? 우리는 지금 누구에게 분노하는 것입니까? 속인 나너너나님입니까? 속은 우리 자신입니까? 아니면, "나너너나 = 미네르바" 라고 믿었던 우리의 과거가 "나너너나 = 29세" 라는 명제와 마주치니 이행성의 원리에 따라 "미네르바 = 29세" 라는 엉뚱한 결론이 나와버려서... "미네르바 ≠ 31세" 라고 주장하던 우리의 다른 모습과 모순되기에... 절대 그런 모순을 들켜서는 안되겠기에... 그것도 아니면, 꼭 미네르바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종류의 어정쩡한 딜레마에 휩싸이니 자기방어의 차원에서 나너너나님에 대한 반응을 결정하는 것입니까?
나너너나님의 신분 문제를 먼저 공개적으로 알려주신 우리 카페의 어르신은, "상식"을 말씀하셨습니다. 메일 보안과 익명성에 대한 나너너나님의 관심을, 사기를 위한 도구, 또는 피해망상 정도로 해석하셨습니다. 그런데 인터넷도 아닌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직접 만나고,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분들은 그 사람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대신 나온 거라느니, 진짜를 내놓으라느니, 뒤에 숨어서 조종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주장을 하십니다. 그것이 님이 말씀하시는 상식입니까? 상식적인 사람은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겁니까? "싸구려 눈물"에 호소하는 것은 님의 말씀대로 분명 잘못되었습니다만, 거기에 대한 대안은 또다른 피해망상뿐입니까? 차라리 격한 감정과 문학적 스페셜 이펙트라면 상식의 선 안에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만...
픽션을 만들기도 쉽고 (물론 그 픽션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나너너나님도 결국 포기) 그러한 픽션을 이용하여... 오프라인에서 상처입은 자아를 드러내지 않고 활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익명성을 이용한 사기와 악플과 인신공격이 난무하기도 하지만, 반면... 성격이나 건강이나 다른 사정 때문에 오프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할 수 있고, 정부의 철통같은 감시 때문에 말하기 힘든 것들도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TV와 신문이 모두 독재정권의 손에 넘어가도 인터넷만은 부당한 억압으로부터 빠져나갈 여지가 있습니다.
미국 헌법의 기초를 닦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는 알렉산더 해밀턴 (당시 뉴욕주 대표), 제임스 매디슨 (이후 대통령이 됨), 존 제이 (이후 대법원장이 됨) 이렇게 세 사람은 1787년부터 약 1년에 걸쳐 "퍼블리우스"라는 닉네임으로 신문에 85편의 기고를 하였습니다. 잘 나가는 신문이었으니, 요즘으로 말하면 아고라에 글을 쓴 셈이죠. 이 85편이 바로 미국의 헌법 제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는 일명 <연방주의자 논집>으로, 지금까지도 헌법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자료가 됨은 물론, 18세기 후반의 정치사상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이 작품은 명망있는 정치가와 법률가 세 사람의 합작이었으나, 이들의 아고라글(?)은 언제나 1인칭 단수로 쓰여졌습니다. 당시 독자들이 보기에는 차기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아닌, 그저 어느 고지식한 학자가 쓴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르지요. 글쓴이의 실제 신분은 5년이 지나서야, 미국도 아닌 프랑스어 번역본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인가요? 미네르바 7인 합작설? ㅋㅋㅋ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는 것이 마치 대역죄인 듯 말씀하는 분들께 여쭙겠습니다. "집단망명 왜 가세요?" 모두들 사이좋게 실명 까고, 실제 생년월일 까고, 개인정보 다 까고, 전세계 유일의 인터넷 실명제를 강요하는 대한민국 다음 아고라, 네이버, 싸이월드에서 더 행복하게 지내실 수 있을 것 같은데...
거짓으로 병사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지휘관 얘기를 계속하는 분들께 여쭙겠습니다. "사지에 다녀오셨나 보죠?" 나너너나님한테 벌써 사기라도 당하셨습니까? 29살 스파이가 님의 머리에 총이라도 들이대던가요? 아니면 미네르바의 분신이라는 우리만의 환상에 이끌려 아정포에 들어오신 것부터가 사지의 시작이었나요? 아정포가 사지, 죽은 땅이라면... 그 사지로 이어지는 환상을 다함께 만들어낸 우리는 무엇입니까?
저 조나단은 27살입니다. 이건 아무도 의심을 안 하시데요? 경제 얘기를 안 해서 그런가? 20대 30대 신인작가들도 할배 할매 이야기를 잘만 쓰더군요. 최소한 아고라에서 픽션 티가 나지는 않을 만큼. 나너너나든 미네르바든 박○○이든... 29살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칼 마르크스는 31살에 <공산당 선언>을 썼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30살에 <논리철학 논고>를 썼습니다. 참, 수학천재 소년은 모든 엄마들이 부러워하지만 젊은 이론가는 환영받지 못하는 나라라는 것을 잊었군요.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반공교육 때문만은 아니죠 아마...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적으로 마르크스주의는 인류 최대의 "사기"였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이 얘기는 다음 기회에...)
미국판 싸이월드, 페이스북(facebook)은 20세의 대학생이 기숙사에 앉아서 만들었고, 미국판 디씨인사이드, 포챤(4chan)은 16세의 고등학생이 엄마 몰래 만들었습니다.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이 두 얼굴은 종종 서로를 보며 찡그립니다. 심할 때는 서로의 코를 깨물기도 하지요. 저는 나너너나님에게서 두 얼굴을 봅니다. 무슨 괴상한 "나너너나 2인 합작설"이 아니고... 그렇다고 그 양반이 정신분열증이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고... 한 사람 안에서 주도권을 놓고 싸우는 두 마음의 갈등이 엿보입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제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을 나너너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다 그렇듯이... 귓가에서 속삭이는 하얀 천사와 까만 악마...
................. 불쾌해 하실지도 몰라서, 마인드 리딩은 여기서 그만 ..............................................
나너너나님의 비공식적인 영향력은 단지 그분이 원해서 쥐어짜낸 것도 아니고, 단지 우리가 기꺼이 드린 것도 아닙니다. 둘 다입니다. 나너너나님의 예전 글들, 그리고 게시판 밖에서 주고받은 서신들을 보면... 카페에서의 막강한 영향력을 반가워하며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마음과 그것이 버거워서 제발 내려놓게 해달라고 조르는 마음.... 저는 두 가지 모두가 보이더군요.
저의 망명사이트 개발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나너너나님이 비밀리에 진행한 모금 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납득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고 판단한 우공이산님과 운영진이 제일 먼저 브레이크를 걸었으며, 이틀이 지나서야 뒤늦게 소식을 전해들은 저도 중지를 요청드렸지요. 그 때도 느꼈습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두 마음... 두 가지 욕구...
그러한 자신의 약점을 알고 계셨기에, 자신의 계좌가 아닌 아정포 회계 씽씽투유님의 계좌로 입금을 받았나 봅니다. 아무튼 이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공지가 된 것처럼, 모금액 모두를 아정포 기금계좌에 정식 입금함으로써... 즉, 기금 사용에 대한 권한을 나너님으로부터 카페 운영진에게 모두 넘겨드림으로써, 돈을 관리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로부터 나너님을 자유하시게 해드렸습니다.
어쩌면, 나너님의 내면을 감히 제가 엿본 이야기라기보다는... 저와 나너님 두 사람이 자주 주고받은 이야기를 꺼낸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 경우 누가 하얀 천사고 누가 까만 악마인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김 ...
헐리우드 삼류 영화에나 나올 법한 평면적인 캐릭터로 사람을 해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친구" 아니면 "사기꾼", "할배" 아니면 "젊은이", 아무 거나 딱 한 개의 포스트잇을 붙여버리고 잊어버리기는 쉽습니다. 반면,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개념을 하나의 대상에 한꺼번에 적용하고 둘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 그 희극과 비극 모두를 한 사람의 이름 아래 받아주는 것은 어렵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언행에서 모순이 발견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란 어떤 형태로든 모순을 내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이 피할 수 없는 모순이 끊임없이 지진을 일으키는 경계선, 표면에 드러난 산맥과 계곡의 지형이야말로... 그 사람 안에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갈등의 본질, 즉 그 사람의 가장 진실한 모습을 가장 꾸밈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판단은 여러분에게, 아니, 우리에게 맡기겠습니다. 판단하서나 용서하거나 무시할 권리가 과연 우리에게 있다면 말이죠... 그러나 남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자신을 가리키는 나머지 네 손가락을 한 번쯤 살펴보고, 남을 끌어안더라도, 그 사람의 한 단면만이 아닌, 그 사람이 내포한 모순과 지진과 화산과 쓰나미까지도 다 같이 끌어안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미네르바의 환상, 대한민국 0.1%가 우리 천민들을 보살펴 주고 계시다는 꿈에 젖어, 성은이 망극하여 어쩔 줄 모르던 분이 있다면... 이제 그 깨진 꿈으로부터 자유로우신가요? 미네가 그렇게 가르쳤나요? 영원히 0.1%의 성은에 감읍하며 살아가고, 나와 비슷한 서민의 약점은 마음껏 깔봐도 된다고?
누군가가 다음넷에 필적할 만한 대형포털 하나를 짜잔, 하고 선사하면 에헴, 하고 입주하려고, 그런 로또같은 꿈을 꾸고 계시다가 조또가 되어버린 분이 있다면... 그 분은 이제 자유로우신가요? 죄송하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 마땅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차이를... 그 익명성의 양면 모두를 인정하지 못하는 분을 위한 망명사이트 따위는 없습니다.
나너너나님은 자유로우신가요? 떠난다고 자유하시겠습니까? 계속 계신다고 자유하시겠습니까? 입에 쟈크 채우고 더이상 말하지 않는다고 자유로운 것이 아니니, 리드미님도 끝내 마음이 아프시겠지요... 억압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불완전한 자유의 착각입니다. 남을 버리고 나를 지키는 것이 당장은 평화 비슷한 느낌을 줄지도 모르나, 그 어색한 침묵의 DMZ에 우리는 머물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