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 03 - 13
안녕하세요. 늘 아고라 주위만 맴돌고 있는 해외사이버촛불 조나단입니다. 메일을 다 쓰고 다시 가보니 그 사이에 읽기권한을 바꾸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써놓은 것이 아까워, 그리고 여전히 눈에 띄는 다음에 대한 의존성 등 다른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기에, 그냥 보내겠습니다.
다음 하는 짓이 맘에 안 들어서 중간에 한번 탈퇴해 놨더니만 이젠 해외 거주자라고 가입부터 왕 짜증나게 만드는군요. 그럭저럭 재가입은 했지만, 실명확인 땜시 아고라 글쓰기도 안되고 (해외 거주자한테 본인 명의의 핸드폰이 어딨습니까?) 더 황당한 것은 나너너나이즘 카페 가입조차 안되는군요. 가입을 안 하면 심지어 공지사항조차 읽을 수 없게 해놓으셨군요.
아고라 탈출, 엑소더스, 다음 폭파(?)를 바라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면서 다음 회원, 카페 회원, 그들만을 위한 폐쇄적인 공간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아가씨들끼리 모여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며 친목을 다지는 카페도 아닌데 말이죠. 그리곤 "세계 아고라 정의 포럼"이라고 제목을 붙이셨군요.
정의(正義)가 무엇입니까? 끝도 없는 철학적 논의는 접어 두고, 일단 그냥 "공평한 것"이라고 대강 정의해 둡시다. 국적이나 거주지와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정보에 접근하고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정의입니다. 가난해서 핸드폰을 사지 못해 본인 명의의 핸드폰이 없는 사람도 자유롭게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쓰고 남의 글도 읽을 수 있는 것이 정의입니다. 그걸 아시면서 일부러 폐쇄적인 카페를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지만, 아이핀 제도가 국민통제의 수단이라는 내용의 글에 링크를 거셨던 그 나너너나님의 닉네임을 걸고 만든 카페에서 주민번호를 요구하니 굉장한 모순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군요. 다음의 불합리한 운영행태를 비판하시는 분들은 꼭 구글을 들먹입니다. 구글뿐만 아니라 어떤 해외 포털이든, 처음 접속하는 순간부터 국내 포털과 제일 눈에 띄게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아도 컨텐츠를 읽는 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다는 점입니다. 글을 쓰려고 가입할 때도 주민번호와 전번 따윈 묻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남의 이름을 도용하고 멀티아이디로 그지같은 짓을 하는 인간들이 세상에 널렸다는 것을 얘네들이 결코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개방성을 유지합니다. 덕분에 전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구글과 같은 사이트들을 쉽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주민번호와 폰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 하도록 만들어 놓은 국내 포털의 행태는 그 폐쇄성을 이용해 회원수를 늘려 돈을 벌려는 수작인 것을 모르십니까? 정부가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수단의 일환인 것을 모르십니까? 그런데 그런 정책들을 비판하신다는 바로 그 분들이 당신이 비판하는 바로 그 정책들을무분별하게 따라가고 계십니다. 조금전 readme님이 빨간 글씨로 붙인 P.S.를 보고 다들 1억 얘기만 하고 있는데, 저는 나너너나이즘 카페의 그 폐쇄성에 대한 비판이 먼저 보였습니다. 다음을 떠나자, 다음을 망하게 만들자는 분들이, 다음에 카페를 차리고, 다음 회원이 아니면 아무 것도 못 읽게 해놓고, 벌써 회원이 이만큼 늘었다며 아고라에서 자랑을 하고 계십니다. 님들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카페의 목적처럼 정말 새로운 시도를 하시려면 첫 걸음부터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내딛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도 믿기 힘든 이 시대에 아고리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뢰할 만한 이름입니다. 객관적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 신뢰를 얻으려면, 얼마 후면 기억에서 사라질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말과 행동, 수단과 목적이 일치하는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가장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그 일관성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readme님의 경방 589366번 글에 대하여... 10개월 전 아고리언이 오픈하던 날부터 "아고라 대안"이라며 나타났다 흐지부지된 수많은 사이트들을 다른 어떤 분들만큼이나 유심히 지켜보았고, 그 중에서 제일 초라한 사이트 하나를 여전히 관리하고 있는 미천한 사람이 없는 글솜씨로 몇 마디만 올리겠습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계신다고."
아고라가 불안하여 대안을 찾고 계신 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50페이지의 사업계획서와 1천 페이지의 종합계획서가 아닙니다. 엑소더스에 필요한 것은 아무도 다 읽지 않을 1천 페이지의 서류가 아니라, x86 아키텍처에서 당장이라도 실행 가능한 1만 줄의 프로그램 코드, 그리고 그 코드를 바탕으로 작품 하나를 꾸려나갈 몇 사람의 동지와 약간의 시작자금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지요?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솔직히 아시는 분 있으면 손 들어 보십시오. 저는 모르겠습니다. 젊어서 그런가요? 쉬흔 넘은 분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시나요?
2008년 5월 2일 촛불을 든 소녀들에게 정권을 전복시키겠다는 꿈 따윈 없었습니다. 비슷한 무렵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시작하신 네티즌들 가운데 지금과 같은 전국적 언론소비자주권운동을 기대하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1773년 12월 16일 보스턴의 차가운 바다에 차(茶)를 쏟아버린 사람들에게 독립하여 세계 최강대국을 만들겠다는 의도 따위는 없었습니다. 1955년 12월 1일 몽고메리 버스의 백인 전용좌석에 앉은 로사파크스 아주머니도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자신의 죽음 후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들도 자신이 억만장자가 될 줄 알았겠습니까?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지금과 같은 규모가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도 별로 없었으며, 초여름부터 아고라에 글을 써 온 미네르바 역시 몇 달 후 자신의 글이 그렇게나 큰 센세이션을 일으킬 줄은 짐작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며 일을 해나가며 현실과 부딪혀 가며 서서히 알아나가야 하는 것이지, 한 박스짜리 종합계획서와 향후 10년간의 사업계획을 작성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 동안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통해 우리 네티즌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아직 대답하지 못하더라도 무엇을 원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는 간단하게나마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점은 readme님을 비롯한 여러 아고라 논객들의 글에도 드러나 있으며, 네티즌 망명지의 별볼일없는 소개글에도 몇 마디 주절거려 놓았습니다. 거창한 계획만 평생 작성하다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또 흐지부지되느니 차라리 열심있는 분들이 지금이라도 행동에 돌입하여 또다시 시행착오를 겪어갈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시위 진압당하면 또 모이면 됩니다. 촛불아 모여라 될 때까지 모여라! OPCL이든 OTL이든 실패하면 또 시도하면 됩니다. 될 때까지...
50페이지의 사업계획서와 1천 페이지의 종합계획서는 서서히 완성될 것입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리고 만약 나중에 누군가가 눈치채더라도 그건, 계획서가 아닌 결산서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럼 저는 아무도 모르는 제 조그만 사이트로 돌아가겠습니다. 찾아주시지 않아도 거기 머무르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주)다음의 횡포에 대항하는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합니다.